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이렇게 세차게 비가 뿌리는 날은 노가다는 영낙없이 공일이다.
그러나 그는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욕실부터 찾았다.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틀어놓고 비누를 적신 다음 몸 구석구석을 대충대충 문질러 댄후 물을 뿌렸다.
몇차례 헝클어진 머리를 샴푸로 씻은 후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어느정도 딱아낸 다음 팬티와 런닝셔스를 갈아 입고 집을 나섰다.
비는 조금씩 잦아드는듯 했지만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또다시 바람과 함께 세차게 뿌려댔다.
어차피 일은 틀린 거지만 그는 지하차고에서 차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감독이라는 직책은 비가 온다고 쉴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자리만은 아니다.
전날 철거한 것들은 비바람에 별일 없는지..
혹 어딘가 물이 고여 있지는 않는지 ....
미쳐 철거가 끝나지 않은 것들은 별 피혜가 없는지,,
눈은 와이어 부러쉬 너머 길을 보면서 머리는 내내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비가와서 그런지 현장은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우산을 들고 그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별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어지럽게 부서진 건물잔해 사이로 고양이 한놈이 비를 피하느라 잔뜩 웅크리고 있는 폼이 영낙없이 거지꼴이다.
현장은 생각보다 별 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포크레인 으로 긁다 만 산허리가 약간 허물어 졌을 뿐 별 다른 이상을 발견 하지 못하자 그는 비로서 시장끼를 느꼈다.
비니루 장판으로 상판을 가린 자판기 앞에서 동정 몇개를 주입구에 밀어넣고
밀크커피라고 적어둔 표시판을 누르자 조르르하고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른 아침이라 그는 혼자서 우산을 바쳐들고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뒷일을 생각했다.
철거가 완전히 끝나려면 아무래도 이틀은 더 걸릴 것 같았다.
그는 머리속으로 대충 철거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처음엔 포크레인을 하루라도 덜 쓸 궁리를 하였지만 그렇게 뾰족한 수가 날 것 같지 않았다.
포크레인 일대는 전보다 조금 올랐는지 보통 25만원에서 30만원했다.
그것도 02가 그렇지 07이나 08은 값이 더 나갔다.
철거비용중 포크레인이 차지하는 비용은 그리 많은 건 아니었지만 건축이란 장기간에 하는 작업이기때문에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절감하지 않으면 나중엔 눈더미처럼 공사비가 불어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한푼이라도 아낄수 있을 때 아껴야한다.
그러나 요즘은 폐기물을 갖다버리는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지금처럼 분리수거가 심한 때는 현장에서도 가급적이면 흙은 흙대로 벽돌은 벽돌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따로 분리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분리가 귀찮다고 마구잡이로 실어나르면 4톤 트럭 한 차에 보통 40만원에서 50만원이라는 돈이 눈 깜작할 사이 날라가버린다.
그는 자동차로 돌아와 뒷좌석에 던져둔 설계도면을 다시 한번 꼼꼼히 훑어보며 기초를 어떻게 놓을지 골돌히 생각했다.
산 허리자락이라 아무래도 땅이 퍼실해서 안심이 않되었다.
경험상 이럴 땐 원리원칙대로 시공하는게 가장 안전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지만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그를 괴롭혔다.
산 허리 일부를 자르다 보니 서쪽으로 옹벽을 쳐야하는 일과 왕대를 자르지 않고 건물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수 있도록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였다.
사실 이런건 설계도면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자연 그의 머리를 쥐어 짤 수 밖에 없었다.
설계나 디자인은 책상 위에서 상상으로만 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종종 현장사정과 너무나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작업은 언제나 현장과 맞물려 생각하고 순간순간 고쳐나가야 한다.
그의 현장 도면이 새까만 이유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이 그 속에 빼꼼이 들어 차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은 집 주인(건축주)으로서는 수지 맞은 일이다.)
집을 아무리 잘 지어도 디테일한 부분이 엉성하면 언필칭 사람들은 부실공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실공사가 아니라 디자이너나 설계자나 현장감독이 사전에 그것을 인지 못한 무지를 탓하는게 더 옳을지 모른다.
특히 현장에서 일꾼을 독려하고 후려나가려면 감독은 디자이너나 설계자가 그린 도면 외에 현장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훤히 숙지할 정도로 노련한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
집은 머리로 짓는 것이지 깡다구로 짓는건 아니다.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현장은 그리 달갑지 않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비 오는 날 만큼 좋은 날도 드물다.
일꾼은 하루를 쉬면서 장기전에 대비하여 숨을 고를 수 있어 좋고 감독은 미쳐 생각지 못한 것을 챙길 수 있어 좋다.
비가 오면 여러가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배우게 되는데 빗물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며 어디서 고이는지 또 비가 많이 올땐 이 지방은 주로 어느 방향으로 들이치는지 그건 비가 오지않으면 전혀 알 수없는 것들이다.
때문에 비오는 날 현장을 둘러보는 것은 그러한 지식을 사전에 습득함과 동시에 우수관과 배수관을 어떻게 내는게 가장 합리적인지 그리고 건물이 완성된 후에도 비바람의 피혜를 가장 적게 받게 하려면 지금 내고자 하는 창의 위치는 별 문제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때문에 비는 참 좋은 거다.
그새 커피가 다 식었나보다.
'살며 생각하며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흐르는 강물 처럼 (0) | 2006.02.04 |
---|---|
잡부 (0) | 2006.02.03 |
사랑이란..................... (0) | 2006.01.31 |
Drama........... (0) | 2006.01.30 |
색의 조화 (0) | 2006.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