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1

잡부

커피앤레인 2006. 2. 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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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싫던 좋던 이 바닥에서 밥 먹고 살려면 이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겨우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제 시간에 현장까지 갈 수 있다.

 

야행성인 그는 새벽에 일어나는게 여간 고통스러운일 아니었지만 책임을 맡은 이상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명종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그를 깨웠다.

 

6시 30분쯤이면 인부들이 올 시간이다.

 

현장엔 아직 작업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누군가 빗질을 하고 있었다.

신씨였다.

신씨는 그와는 오래동안 함께 일한 잡부인데 잡부라기보다는 이젠 한 식구같은 존재였다.

 

- 신씨요 ....일찍 나오셨네요 ?

- 아이구 사장님 벌써 나오셨습니까

 커피 한잔 갔다 드릴까요 ?

 

신씨는 자판기로 달려가더니 재빨리  커피 두잔을 빼왔다.

-어제 비가 너무 많이와서 걱정돼서 좀 일찍 나왔습니더

- 고맙습니다

-오늘 도목수 온다 했습니까?

-아마 조금 있으면 올겁니다.

김목수 오거던 고야부터 지어야하니까 그것 좀 거들어 주시고 포크레인하고 덤프 트럭 기사는 자기들 알아서 할테니까 식당에 가서 오늘 밥먹을 인원만 알려주이소

-알았습니더

사장님 시키는대로 할테니까 뭐든지 말만하이소.

 

신씨는 원래 철근 오야지를 따라 다닌 사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현장에 왔다가 그의 눈에 띄어 10년 가까이 그와 함께 일하는  잡부인데

키도 작고 나이도 이미 환갑을 넘은 나이이지만  힘만은 장사였다.

젊은 잡부들이 아무리 그를 따라 잡으려해도 그의 부지런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흠은 있었다.

자주 그러는 건 아니지만 간혹 술이 취하면 낮에도 아무데나 꼬부라져 잠을 잤다.

처음엔 일이 고달파서 잠시 한숨자는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낮 술만 먹으면 어김없이 인사불성이 되어 아무데서나 꼬부라져 자는 버릇이 있었다.

 

건축현장은 언제나 위험이 따르는 곳이다 보니 낮에는 엄하리만치 술을 금한다.

그러나  간혹 주위사람들이 술 생각이 나면 언제나 마음씨 좋은 그를 꼬두겨 술을 한 두잔 마시게 하는게 탈이었다.

 

건축현장이란게 아무리 짧아야 2-3개월을 한 곳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낯선사람도 나중엔 어느새 정이 드는 법이다.

그러다보니 현장근처에 사는 이웃 아줌마들과도 자연스레 친해지기 마련인데 그 날은  이웃 아줌마 중 한 사람이 생일이었던지 점심을 먹으면서 그에게 술을 한잔 권하였던가 보다.

 

잠시 사무실에 들렸다가 현장에 가보니  한 낮인데도 신씨는 이미 만취가 되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계속 지껄여대며 현장 주위를 돌아다녔다.

아무래도 무슨 사고가 일어날 것만 같아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가 쉬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하던일을 마자해야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신씨를 붙잡아 억지로 택시에 태우고 그의 집까지 바래다 주자 그의 아내가 사장 보기가 민망했던지 부끄러워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런저런 인연으로 해서 그는 누구보다 신씨를 각별한 애정을 갖고 대했는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일만 있으면 그를 불렀다.

 

물론 그 일 이후로 신씨가 현장에서 술을 입에 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경주인가 어딘가에 용한 침쟁이가 있어 거기가서 금침을 맞은 이후로는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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