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1

때론 담쟁이 덩쿨처럼

커피앤레인 2006. 2. 4. 22:36
6170

 

겨우내 흉물스럽기 조차 한 담쟁이 덩쿨이 봄이 오기가 무섭게

새잎을 돋우며 새파랗게 담벼락을 장식할 채비다.

 

봄은 노가다에게는 황금기인데 기후조건이 일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봄은 종종 가랑비를 뿌리며 심술을 부리곤 하였다.

 

집을 지으려면 의례히 거쳐가는 의식이 있는데 이른바 고사라는 것이었다.

고사는 집 주인의 종교에 따라 하는 의식이 제각기 다른데

어느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

 

미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돼지머리를 사서 자리를 깔고 고사를 하였지만.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들은 목사님이나 신부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거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고사는 한마디로 하늘과 땅에 집을 짓는다고 신고식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날은 그도 새벽부터 옷을 갈아입고 흰 봉투를 하나 준비 하였다.

제사를 드리던지 않드리던지 제물대신에 봉투를 내밀어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이 마음이나마 주인과 같이한다는 동참의사도 되고 건축하는 동안 내내 안전사고없이 잘 되기를 비는 염원도 그속엔 들어있었다.

 

이러한 의식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옛날 부터 우리 조상들이 해 왔던 것인데 요즘들어 조금 간소화해졌을 뿐이었다.

이 날 거두어 들인 돈은 대개 도목수 손으로 넘어가 노가다들끼리 회식비용으로 충당하였는데 그러다보니 고사 지내기 전날부터 도목수가 은근히 옆구리를 쳤다

-사장님예 ....

내일은 고사일인데

사장님은 아무리 적게 내어도 몇 십만원은 준비하셔야 않되겠습니꺼?하고 느스레를 쳤다.

 

-사장이 뭔 돈이 있오 ?

 

-아이고 집이 잘 될려면 사장님이 한턱 팍 써야 일이 술술 잘 안풀리겠습니꺼

-ㅎㅎㅎㅎㅎㅎ이런 수가.......참으로 고약스럽다.

 

고사가 끝나고

흙을 파기 시작하면 노가다는 적어도 몇 달간은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데

아침밥을 거르는 것은 예사일이었다.

이미 각오한 일이지만 신발이나 옷도 하루 걸러 빨아야할 정도로 흙과 시멘트 범벅일 때가 많았다.

 

그나마 봄에 하는 공사는 양반이었다.

초여름에 시작한 공사는 착공하기가 무섭게 장마철을 대비하여야 하였다.

장마가 끝나면 담쟁이 덩쿨은 무서울 정도로 시퍼렇지만 노가다는 땡볕과 또 싸워야했다.

한 여름동안

현장에서 땡볕과 싸우고 나면 촌놈도 그런 촌놈이 없었다.

 

얼굴이고 팔이고 죄다 시커멓게 그을렀다.

 

땡볕을 겨우 피하고나면 이번엔 태풍과 또 싸워야했다.

가장 일하기 좋다는 가을은 가을대로 수시로 올라오는 태풍으로 밤새 가슴졸이는 일이 다반사처럼 생겼다.

 

농부가 한 해 땀흘려 가꾸어 놓은 공사를 태풍으로 망치듯이

공사현장 역시 행여 바람에 집이 무너지지는 않는지....

지주대로 세워둔 삿보드나 비계가 날라가서 사람을 덮치거나 남의 집을 폭삭하게 않는지 .....바람이 쌩쌩 불때마다 가슴이 철렁하였다.

 

가을이 지나면 노가다는 서서히 겨울이 두려워졌다.

날씨도 점점 추워질 뿐만아니라 일감도 서서히 떨어졌다.

0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면 시멘트 몰탈이나 레미콘이 얼기 때문에 공사자체가 아예 불가능하였다.

때문에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듯이 공사판 현장은 언제나 그 모든 악조건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지 않으면 않되었다.

 

노가다 하는 사람들을 거칠다고 하는 것은

일도 일이지만 그런 환경과 싸워서 이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가 없었다.

원하던지 원하지 않던지 간에 환경은 그들을 강인하게 만들어 나갔다.

 

그런 환경적인 제 조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일도 계절도 아니었다.

 

바로 돈이라는 요물이었다.

 

건축은 하나하나가 돈이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벽돌하나도 돈이고 시멘트 한포대도 돈이었다.

 

 

인부 한사람을 쓰려해도 돈이고 폐기물을 갖다 내버리려고 해도 돈이 갖다 버리는 것이지 이웃 사촌이 갖다 버려주지는 않았다.

 

종종 나들이를 가다보면 아파트를 짓거나 호텔을 짓다 버린 폐건물이 전국방방곳곳에 꽤 있는 것도 모두 그넘의 돈 때문에 넘어지고 자빠졌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본의아니게 영오의몸이 된 사람도 있었고 유세차하면서 세상을 버린 사람도 많았다.

 

이 세상에서 살려면

 담쟁이나 사람이나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이었다.

미물에 불과한 담쟁이도 죽지 않으려고 한 겨우내 담벼락에 붙어서 안간힘을 쓰듯이

인간도 그 나름대로 그가 사는 사회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두발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텨야했다.

 

다들

사는게 뭔지 ....................................................................

 

 

 

'살며 생각하며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 담을 거닐며  (0) 2006.02.09
똥통정수기/ 정화조  (0) 2006.02.08
흐르는 강물 처럼  (0) 2006.02.04
잡부  (0) 2006.02.03
비 내리는 현장  (0) 200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