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1

외나무 다리

커피앤레인 2006. 3. 23. 09:41

 

9075

간밤엔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눈을 뜨니 새벽 2시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노래방에만 불이 켜있고 제다 불이 꺼져 있었다.

리어카에 쓰레기 봉지를 담고 있는 청소부 모습이 간간이 눈에 들어왔을뿐 거리는 쥐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냉수를 한잔 마시고 잠시 명상과 기도를 하고

난로에 불을 지폈다.

 

빨간 불꽃이 일었다.

기분이 좋다.

 

살아온 길을 더듬어 보며 익숙한 것들에 대한 마음속의 괴리를 쫓아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은 형상은 무엇인지

머리속이 한동안 집요해졌다.

 

십여년을 옆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던 홍사장이 얼마 전에 죽었다고 낮에 김이사가 전갈을 보내왔다.

한참동안 멍한 기분이 머리를 어지렵혔다.

 

아직도 젊은 나이인데 뭐가 그리 바빠서 빨리 가버렸는걸까.....

 

아들이 서울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자랑했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그런 아들도 아비의 병은 고칠 수 없었던가 보다.

 

홍사장은 H그룹 무역파트에서 오래동안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홍콩지사장으로 있다가 뉴욕지사장으로 다시 발령을 받을즈음

공교롭게도 그의 부친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종손인 그는 사표를 내던지고

그 길로 부산으로 내려와 부친을 간호하며 자기 사업을 하였는데

요즘 세태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지도 모른다.

 

그가 부친에게 보인 정성은 정말 각별했다.

 

시간이 나면 그는 종종 옆 사무실로 놀러와 뭐가 그리 신기한지 이것 저것 쳐다보며

인테리어에 대하여 묻기도하고 집에대한 자문을 얻어가기도 하였다.

 

어쩌다 한가한 토요일 오후엔

 그도 심심하였던지

라조기나 팔부채같은 요리를 시켜놓고는 소주나 한잔 하자면서 그를 불렀다.

 

영어가 꽤 유창했는데

대기업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아니면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절대 과음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자기 절제가 강하였다.

 

그런 그도 어느날 술에 대취했는지 2차 3차 가자고 사람을 못살게 (?) 굴었다.

알고 보니 취중에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봐 u  사장 나 좀 도와줘

-뭘 도와드릴까요

-딴게 아니고 ,,,,근데 나 이런말 해도 되나 모르겠다

-뭔데 그리 뜸을 드립니까 ...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릴테니 맘 푹놓고 말씀하십시오

-웃지마래이

-웃긴여 ..........

-그럼 내가 용기를 내서 말하는데 저,,,,,,,,,,,,,,,,,,

-아이고 숨넘어가겠습니더 빨리 말해보이소 마

 

-사실은 내가 저 앞에 있는 커피숍의 지현이를 좋아하거던

-네에? 그 애는 사장님 사무실에 자주 차가지고 오잖아요  

-근데 말이다 나 그 아이하고 노래방에 한번 가고 싶은데  절대 둘이서는 안간다 안하나

-ㅎㅎㅎㅎㅎ홍사장님이 몬가 수상한걸 보였군여

- 아이다 절대 그런게 아이다

-그래요? 그럼 내가 날을 한번 잡아서 애기해볼게여

-그래 u 사장 니가 말하면 틀림없이 올거다

 그애 니좋아한다 아이가

-아이고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괜히 생사람  잡을려고 ....

 

-우쨌던 나는 u 사장 니만 믿는데이

- 자자 술이나 한잔 하입시더 고건 나한테 맡기고 .......

 

지현이라는 여자는 그의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커피숍에서 카운터 일을 보고 있었는데

인물도 반반하고 예쁠뿐만 아니라 매너도 깍뜻했다.

 

원래는 무역회사에 다녔는데 자기 언니가 커피숍을 차리면서 잠시 도와달라고 해서 임시로 거기에 나와 있었다.

본래부터 그 바닥 태생이 아니어서 그런지 뭇 사내들이 침을 흘리며 줄을 서서 커피를 사고 꼬셨지만 그 애는 요지부동이었다.

 

손님들이 하도 권하니 접대용으로 잠시 커피는 한 두잔 마셨지만  그 이상은 허락지 않았다.

그러니 몸이 달대로 달은 녀석들은 온갖 구애를 다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나가 떯어지자 나중에는 뭐할년 뭐할년,,,,,,하면서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린다고 못난 녀석들 처럼 재를 뿌리고 다녔다.

 

홍사장은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보기보다 애가 지성적이고 교양도 있고 영어도 능통하니 꽤나 좋아했던가 보다.

한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건데 달 재간이 없자 술김에 염치불구하고 그에게 하소연아닌 하소연을 한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역시 술에 취해서 콩키장키하고 떠들다보니 뒷 감당도 할 재간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뻥뻥 ... 쳤다.

하나 그라고 뾰족하게 별수있는 건 아니었다.

(항상 사내들은 이래서 문제여..................)

 

_간빠이

u 사장 오늘 술 값은 내가 낸다

그대신 그애 책임지래이 ....................

- ㅎㅎ 염려 마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천하의 이 **가 그까짓것 하나 해결 못하겟습니까

(어절시고 ...................떡 줄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치국부터 먹기는)

 

문제는 다음날 부터 홍사장은 그만 만나면 요상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은근히 압력 아닌 압력을 넣으면서  어찌 돼가노 하는 시늉이었다.

차마 젊잖은 체면에 겉으론 말을 안했지만  니 알아서 해라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일을 우짜노......

 

술김에 큰 소리는 뻥뻥 쳤지만 쥔들 몬 재주가 있노

그렇다고 쪽 팔리게 내가 이래서 이랬는데 한번만 봐 줄라하기도 그렇고 ....

(아이고 고놈의 술이 웬쑤지 ,,,,,웬쑤 )

머리가 찌끈찌끈 했다.

 

근데 누가 그랬던가

뜻이 있으면 길이있다고......

우얀일이고 ...................

 

마침 그 애 친구가 커피 숍에 들렸다가

몬 말끝에 건축디자인 사무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그런다고 잠시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하모하모 오다마다 ...우찌 이런일이

조상님 은덕이다여

 

옛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온김에 친구도 왔으니 홍사장하고 같이 넷이서 저녁도 먹고 노래방에도 가자고 꼬셨더니(?)

잠시 망서리더니 둘이서 몬생각을 했는지 좋아라하고 쾌히 승낙을 했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때가 ...

(아이고 아부지요 아이고 어무이요 고맙심더이 .........*경상도 에서는 아버지를 아부지 어머니를 어무이 한다여 )

 

재빨리 홍사장한테 휴대폰을 때리고

 오늘저녁에 드디어 미팅 예약이 되었다하니

-u 사장 참말이제

내 퍼뜩 사우나 갔다가 사무실 들어갈게

내 올때 까지 기다리래이 ,,,,,

하며 마치 소풍가는 아이처럼 들뜬 기분이 역력했다.

 

여자가 뭐그리 좋은지 ..................

 

그날 밤 넷이서 근사한 일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정종을 몇잔 나누고는

드디어 근처 노래방에 갔더니 홍사장은 벌써 취기가 오르는지 예의 기마이(?)를 팍팍 쏘았다.

 

-아줌마 오늘밤은 돈 걱정하지말고 마음껏 가져오소

햐...................우얀일이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평소에는 그는 커피 한잔 값도 극도로 아까워 했다.

(시상에 살다살다 별일 다 보겠다더니 ...진짜 우얀일인교 )

 

각설하고 어느정도 술이 거나하게 취했는지 홍사장은 예의 그 외나무다리를 불렀다.

그는 흥이나면 언제나 이 노래를 불렀다.

 

원래 이 노래는 배우 최민수씨의 아버지 최무룡씨가 부른 노래였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만나면 즐거웁던 외나무 다리

그리운 내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

못잊을 세월속에 날려 보내리

 

대충 그런 노래였다.

 

그가 얼마나 그 애를 좋아했던지

 나중에 알고보니

그애가 무역회사에 처음 나올때부터

 홍사장은 이미 그애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밤이 무르익자 두사람은 오래동안 부르스를 췄다.

 

그날밤 그 추억이 얼마나 깊었던지

사흘간을 그는 내복도 갈아입지않았다고 나중에 고백하였다.

이럴수가........................................

 

 

그러한 홍사장도 이젠 가고 없으니 누구하고 또 외나무다리를 부르고 노노

 

어즈버 태평 연월이 이뿐인가 하노라 ,,,,,,,,,,,,,,,,,,,하더만

아...........................................이 슬픔

오늘은 그를 위하여 술이라도 한잔 부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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