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121/방어진 꽃바위동네

커피앤레인 2006. 8. 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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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처럼  남이 설계한 공사는 맡지않았다.

30여년동안 노가다와 놀면서 남이 설계한 공사를 맡은건 딱 두번밖에 없었다.

첫 작품은 엉겁결에 떠 맡은 조적조 형태의 주택 공사였고 두번째가 경량철골조의 방어진 전원주택이었다.

내가 남이 설계한 공사를 맡지않는 것은 그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3-40%이상은 설계변경을 반드시 해야하기 때문에 그것을 줄이기 위하여 공사를 의뢰받으면 기초설계는 거의 100% 내가 직접한 다음 건축주와 상의가 끝나면 실시설계는 친구 설계사에게 맡겼다.

 

 

방어진 꽃바위 전원주택은 송목수가 수주한 것인데 설계도면 보는 눈이 좀 부족하다보니 공사감독겸 시공을 진두지휘하게 되었는데 공사를 조금씩 진행해보니

설계도면이 상당히 엉터리였다.

알다시피 건축은 끝마무리(오사마리)가 중요한데 설계도면을 누가 그렸는지 앞뒤가 서로 틀렸다.

해서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다가 결국 설계를 그린 놈과 한바탕 싸움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설계를 한 놈이 한 놈이 아니라 두 놈이 한게 사달이었다.

앞에 놈은 자기 일이 바쁘다보니 네가 대신 좀 맡아서 마무리 지어줘라 한 모양인데 뒤에 맡은 놈은 앞의 놈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도 안하고 그리다 보니 이런 꼴이 난 모양이었다.

 

 

하여

현재 나온 설계도면대로  집을 완성하면 마무리가 전혀 않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말귀를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수그리 했다.

 실제로 이런 일은 현장에서 비일비재했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자 숙소로 정한 리젠트 모텔 5층에서 내려다 본 방어진 포구는

그야말로 고요한 정적만 감돌았다.

낡은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포구는 뭔지 모르게 어수선하고 산만해 보였지만 그나름대로 굽은 오솔길을 따라 무질서 속에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새벽 5시 45분, 일단 하루 일과를 체크한 후 여지저기 전화를 걸어 미쳐 확인이 덜 된 것들을 챙긴 다음 첫날이라 현장을 둘러보고  점심식사 후에는 본격적으로

일꾼들과 머리를 싸매곤 기초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상의한다음 지스미를 놓았더니 햇볕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두 팔이 다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데 일을 지시하는 사람 머리 다르고 시공하는 사람 머리가 다른지

점심 내내 설명할때는 다 알아 들었다고 열두번도 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진행했다.

해서 다시 한번 찬찬히 설명을 한 다음 천천히 하더라도 똑바로 하라고 주의를 주었더니 지나 나나 처음 만나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영 그랬다.

더우기 폭염이 쏱아지는 땡볕에서 철공작업을 한다는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땀이 비오듯이 쏱아졌지만 각파이프와 각파이프를 이을려면 절단도 해야하고

용접도 해야했다.

 

 

 

그나마  바닷가가 엎어지면 코댈데라 그런지 부산에 비하면 그나마 시원한 편이었다.

 이곳 사람들조차 땀을 뻘뻘흘리며 이렇게 더운날은 첨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암튼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중국인에게 후이라이(다시 돌아오겠다)하고 잠시 PC방에 들렸다왔더니  그새 지쳤는지 담배를 뻐금뻐금 피우고 앉아있었다.

중국인 잡부는 철공오야지가 데리고 온 사람인데  성씨가 牛씨라고 하였다.

 

해서 이 참에 중국어나 열심히 배울까? 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되도않은 중국말이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씨부렁거렸더니   

지도 뭐라고 씨부렁거렸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모르는건 모르는 것이고 일단 아는 것 만이라도 열심히 씨부렁거리자하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더니  긴 말은 그게 죽인다는 말인지 살린다는 말인지 조차도 모르면서  뚜이 아니면 시에시에하고 되도 않은 말로 또 씨부렁거렸다. 

그러나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다고 몇마디 서로 주고 받다 보니 나이는 37(싼스 치우)세 이었고  칭따오에 살며 고향엔 마눌과 아들이 한명있었다.

암튼 서투나마 공부를 가르쳐줘서 고맙다며 니 쵸우 엔 마 ? (너 담배피우니 ?)하고  담배를 한대 권했더니 하오 하오,,,,,,,(피운다)하며 엄청 좋아라 하였다.

 

 

 

어차피 싫으나 좋으나  며칠동안만이라도  이 친구와 동거동락을 해야할 판이니  

좋은 가정교사 한명 둔 셈치고 틈틈히 적어두었던  중국어 노트를 꺼내

그 친구따라 소리를 내었더니 하오하오 하면서 잘한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작은 아이는 턱 수술을 한다고 제 애미와 함께 어제 입원수속을 했다고 했다.

1여년 동안 이빨을 교정하고 마침내 턱 수술을 하나본데 그나마 모든 준비가 차질없이 잘 되었는지 아내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했다.

공사관계로 같이 있지못해 여러모로 미안하다고 말했더니 오늘은 걱정하지말고 일이나 잘하라고 오히려 격려를 했다.

여자마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