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171/ 그건 나의 몫이었다

커피앤레인 2006. 9. 2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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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의 몫이었다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때로는 새벽 1-2시도 예사로 넘겼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이미 불이 꺼진지 오래였다. 

내일 작업을 위해 산더미처럼 쌓인 폐기물을 대충 정리하고

미쳐 목공 작업이 덜 된곳 부터 단도리를 해 주고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니  

 새벽 2시가 넘었나보다. 

길을 걷는데도 그냥 주저않고 싶을정도로 피로가 엄청 밀려왔다.

만수동에서 작전동까지는 제법 먼 길이었다.

하지만 숙소가 거기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마음 편하게 잠시라도 눈을 부칠려면 익숙한 곳이 제일 편했다.

대충 싰고 잠시 눈을 부친 후 허겁지겁 현장에 왔더니

휴대폰을 숙소에 그냥 두고 온 것 같았다.

요즘은 정신도 지 혼자 답답한지 가끔씩 외출을 하였다.

원경이는 밤 늦은 시각인데도  그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했나보다. 

집안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무척 만족한 표정이었다.

아직 페인트도 타일작업도 하지않았는데 대충 형태만 봐도 감이 잡히는 모양인지 

상당히 고급스럽고 깔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도 요즘 회사일에 지쳤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해서,난 아무래도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으니까 먼저 들어가라고 아파트입구까지 따라가

등 떼밀어 내보냈다.

 

 

저녁무렵 옆집 젊은 부부가 그새 집안 구석구석을 다 훑어 보았는지 

너무 예쁘다며 요모조모 캐물었다.

대체로 이번주말이면 거의 모든작업이 끝나니 그때 다시오라고 하였다.

부부는 리모델링이 다 끝나면 꼭 좀 보여 달라고 간청을하였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집이 너무 험한 탓에 의외로 목공작업 공수가  많이 들었다.

그나마 원경이가 많이 이해를 해줘서 덜 피곤했다.

원래는 반듯한 벽에다  석고 한장 정도만 더 대고

헨디로 마감할려고 했는데 막상 철거를 해보니 벽이 2cm나 굽어있었다.

천정에도 달대 하나 걸려 있질 않았다.

마치 외모만 보고 좋다고 시집갔다가 사기꾼에게 덜컥 목아지가  걸린 것 처럼

주공이 지었으니 의례껏 잘 지었겠지하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1차 폐기물을 다 내 보내고 샤워부스와 큰방 벽 장식과 미진한 부분들을

손 본 다음 내일부터는 타일공이 들어오기로 했다.

한데 일반 타일과 달리 원하는 스톤타일이 없었다. 

해서 서울로나가려다 괜한 시간 낭비하지말고

부산 공장으로 폰을 때려 원하는  스톤타일을 급히 보내달라고 했다.

건축은 순간순간 선택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만큼 돌발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때로는 원하는 컬러와 디자인과 질감이 좋은 걸 고르려면 예산이 따르지 않았고

평범한걸 고르면 두고두고 싸구려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때문에 집장사처럼 겉만 번드리하게 할 것인지 예술가의 자존심을 걸고

이것이 건축이다...............하고 나의 존재의 가치를 지킬 것인지는

그건 순전히 나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