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 활래정
오늘따라 가을비가 내렸다.
경포호를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드니 옛마을이 나왔고
나락들이 누렇게 익은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려 충숙왕 13년에 창건하였다는데
정자들을 너무 방치했나보다.
하나같이 몰꼴이 말이 아니었다.
방해정이 그렇고 경호정이 그랬다.
어느 것은 그나마 손질을 잘 하였지만
어느 것은 마치 헛간처럼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처음엔 몰락한 어느 선비네의 제실쯤 알았는데
강릉을 소개하는 지도를 보니 그리 호락호락한 정자만은 아닌건 분명했다.
역사는 건축과 함께 숨은 얘기들을 들려주는데
선조들의 귀중한 유산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민족은
결코 문화민족이라 할 수가 없엇다.
언필칭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하지만 돈으로 살 수없는게 역사고 유산이었다.
길을 따라 한참을 더 가니
매화당 기념관이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것과 옛것이 어울려있었다.
옛것도 중수를 했는지 본래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개관을 하지 않았나보다. 붉은 줄이 쳐 있었다.
매화당을 조금 벗어나자
이름만 듣던 선교장이 말쑥한 차림으로 눈앞에 드러났다.
들머리에 있는 활래정이 제일 먼저 사람을 반겼다.
주인장이라도 있으면 차라도 한잔 하고 싶건만 ..............
문만 열려있지 사람은 눈 싰고봐도 보이지않았다.
연꽃으로 뒤덮인 호수위에 누마루와 찻방이 퍽 인상적이었다.
작지만 앙증맞은 작은 정자가 자꾸만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아
안을 들여다보니 우리 맛이 저절로 우러났는데
누가 설치했는지 조명은 좀 가관이었다.
이왕에 등을 달려면 좀 더 우리 것에 어울리는
창호지로 감싼 이쁜 등도 많은데
어디서 구했는지 시중에서도 가장 흔히 구할 수 있는
삼파장 형광등을 달아놓았다.
그래도 강릉 제일의 민속자료이고 마지막 남은 99칸 양반가 중 하나인데
어찌하여 그 많은 전문가들이 이곳을 왔다가면서
아무도 조명이 잘 못되었다고 한마듸도 안했을까?
그게 더 신기했다.
동별당과 사랑채인 열화당을 둘러본 뒤
그래도 주인장은 만나야 제격일 것 같아
관장을 만나고 싶어 잠시 관리 사무소에 들렸더니
관장님이 먼길에서 온 손님이라고 극진하게 커피를 대접하였다.
해서,활래정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첫대면에 너무 주제 넘은 것 같아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차만 꿀걱꿀걱마셨다.
차를 물린 뒤 다시 나와 선교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사랑채와 별당이 엄격히 구분된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면면을 보면서
이조시대 아낙네들의 밥 짓는 일상이 눈에 선하게 떠 올랐다.
선교장을 조금 벗어나니
논뚝을 따라 코스모스 꽃길이 만개하였다.
선교장에서 오죽헌은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해서,발길을 옮겼더니 예전에 내가 보았던 그 오죽헌은
저 안으로 쑤욱 감춰져 있는지 보이지않았다.
예전에는 다 낡은 집만 한채 덩그렇게 남아 있었는데
주변을 너무 잘 가꾸어 놓아서 그런지
마치 현충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수령 500년이 넘은 배룡나무와 매화나무들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손님을 맞이하는 바람에
덜 서운헀지만
어즈버 태평연월이 이뿐인가 하더니
오죽헌이 꼭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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