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185/ 경포대에서

커피앤레인 2006. 10. 12. 00:42

 

18166

 

경포대에서

 

 

 

파도야 어쩌란 말이야

파도야 어쩌란 말이야 하고

절규하던 청마 유치환선생이 몹씨 그리운 밤

오늘 드디어 인천을 탈출했다.

 

 

하루만 더 있어도 병이 날 것 같았는데 바다를 보니

왠지 살것만 같았다.

20여년 전이었다.

군대생활을 하며  이곳에 있었는데 

다시오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의외로

손님이라고는 고작 4명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남자라고는 이 놈 한명 뿐이었다.

 

 

하늘에 뜬 달이 하나고

호수에 비친 달이 하나고

그리고 바다에 비친 달이 하나고

술잔에 비친 달이 하나고

그리고 내 마음의 달이 하나라던

경포대를 다시 둘러보니

옛생각이 저절로 떠올라 머리를 복잡하게했다.

하긴, 눈 오는 날 닥터 지바고를 본 것도 그때였지...................

 

 

밤 늦은 시각인데도 

경포대 백사장은 밀려오는 파도소리로 더욱 요란했다.  

파도가 제법 거친지 밀려갔다 밀려오는 파도가 예사롭지않았다. 

 

 

몇주간 마무리 작업하느라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이빨이 다 아플 지경이었는데 

그것도 생판 모르는  철부지 같은 인부들을 데리고

일을 쳐 낸것만도 정말 다행이었다.

모처럼 느긋한 기분으로 담배연기를 한 모금  빨고 바깥으로 내뿜었더니

커피 냄새 만큼이나 진한 향기가 주위를 진동했다.

 

 

한데 무슨 청춘이랍시고 오늘밤은 아무래도 여기서 날밤을 새우며

여명이 밝아오는 걸 보고싶었다. 

해서,우선 저녁이라도 든든히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서 밥먹을 곳이 그리 수월치가 않았다.

대충 끼니를  때우는둥 마는 둥 하고 잠시 PC방에라도 들려볼까하고

여기  가까운 PC방이 어데있어요? 하고 경포 파출소 문을 두드렸더니  

불은 환한데 근무자가 아무도 없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유흥지라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은 잠이 없나보다.

나이트는 나이트대로 횟집은 횟집대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간혹 지나가는 여인들이 요상한 눈빛으로 낯선 이방인을 쳐다보았지만

오늘 밤만은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 아무런 반응도 안보였더니

저들도 머쓱했든지 그냥 지나쳐버렸다.

호텔에서 비추는 밝은 조명때문인지

해안은 한결 신비스럽고 아름다웠다.

언젠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한번 이 호텔에서 묵었다 가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인연이 없는건지 이번에도 혼자왔다그냥 갈 것 같았다.

 

 

 

그나마 밤새 해안을 핥아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