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우째 오르가즘을 아노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다 문득 아버님 생각이 났다.
아버님은 야구선수이셨고 한동안 심판도 하셨다.
아버님 사진은 주로 일제시대에 찍은 것들이 많았다.
신세대사람들에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이겠지만.
아버님은 내가봐도 키가 아주 작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야구는 꽤 잘했나보다.
국가대표급 켓쳐로 유명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프로선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님은 우체국에 근무하시면서
고교야구대회가 벌어지면 심판을 봤다.
대개 주심을 봤기 때문에 종종 공에 맞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가슴 근처에 공을 맞고 들어오면 온 집안은 그야말로로 비상이었다.
아버님이 야구심판을 했을 당시 초대 롯데 감독이었던 박영길 님은 경남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슬러거이면서 4번타자인 박영길씨를 아버님은 자주 칭찬을 했다.
아버님 덕에 이 놈도 일찍 야구장을 드나들며 야구에 눈을 떴는데
골격이 아버님만 못한지 종종 어깨죽지가 탈이났다.
하지만 초등학교시절엔 그래도 야구선수로 뽑혀 제법 거들먹거렸다.
그러나 어깨죽지도 그렇고 어차피 대성하지도 못할바엔 일찌감치 그만두는게 더 낫겠다싶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예 야구 야자는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미련은 지금도 여전했다.
특히 넓은 운동장에서 뿜어내는 응원의 열기도 그랬지만
스코어판에 나오는 000000100이라는 숫자만 봐도 기분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일생에 야구를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거나 야구에 눈이 뜬 사람들은
엉덩이가 들썩거려 좀처럼 야구의 매력을 잊지못했다.
홈런은 물론이고 끝없이 올라간 공을 쫓다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손살같이 날라오는 공을 겁없이 잡기도 하고
때로는 다 잡은 공이라하고 안이하게 대시하다
가랑이 속으로 쏙 빠트리기도 했다.
그러면 코치는 눈알을 부라리며
야 이자식아..............................뭐하는거야 또 알깥잖아 하고 욕을 해대었다.
그러나 야구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9회말 투 아웃 이후라고 말했다.
9회말 2아웃 이후는 인생으로는 거의 황혼기였다.
이제 막 꺼져 가는 심지를 끄느냐 마느냐하는 찰나에
역전 투런홈런은 10년 묵은 체증을 쓸어내리듯이 사람을 짜릿한 황홀경에 몰아넣었다.
해서, 언 놈은 이 순간 만큼은 여자가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황홀하고 짜릿하고 흥분되는 순간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문디,,,,,지랄하고 있네.지가 우예 여자의 그 오묘막측한 오르가즘을 아노 ...........? )
어찌보면 인생도 야구와 같았다.
1회전엔 다들 함해보자하고 의욕이 넘쳐 덤비다가도
2회전 3회전 4회전 5회전이 지나면 예상보다 힘이드는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나마 6회. 7회가 끝나면 아직도 시간이 있다고 애써 자위했지만
8회가 끝나고 9회가 오면 거의 로또를 기다리는 사람마냥 패닉현상에 빠졌다.
누가 한방의 부르스라 했던가.............................
그게 야구고 인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롯또를 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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