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만큼
우리민족의 애환이 서린 다리도 드물었다.
6.2사변으로 부산으로 부산으로 몰려왔던 피난민들은 이 다리 위에서
잃어버린 부모형제와 일가친척을 애타게 기다리며 하루하루 고달픈 삶을 이어갔는데
그걸 노래로 표현한게 굳세어라 금순아 .............였다.
영도다리는 해방이전에 일본사람들이 놓은 다리였다.
당시만 해도 영도는 그야말로 외딴섬이었다.
하지만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영도를 군수기지로 탈바꿈하면서
육지와 수송이 용이하도록 다리를 놓은 것인데 이 다리는 지금도 건재했다.
영도다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개폐식 다리로
일정한 시간만 되면 하루에 두번씩 다리 상판 중
일부가 하늘 높이 쳐 들었다가 배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내려졌다.
지금이나 당시나 다리가 들린다는게 너무 신기했던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그걸 볼새라 아침부터 도시락을 사들고 오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한데 이 다리 옆에 105층인가 107층인가 롯데호텔이 들어서면서 (현재 건축 중 )
영도다리도 철거해야한다는 현실론과 그래도 6,25사변을 겪으면서
우리민족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이 다리를어떻게 하루 아침에 철거하느냐 하고
시민단체와 시관계자와 롯데호텔측이 몇년째 싱강이를 하더니
결국은 현재의 왕복 4차선을 왕복 6차선 내지는 8차선으로 넓혀
옛모습 그대로 도개교로 설치하기로 설계를 수정하였다고 하니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일본의 잔재물이라면 사료 가치가 있는 것이라도 무조건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의 기질상
영도다리는 그나마 행운의 다리였다).
때때로 술에 취하면 자갈치에서 나와 영도다리를 건너가면
굳세어라를 부른 가수 현인의 동상이 오른쪽 모서리에 앉아있었다.
해서, 일부러라도 한번쯤 작은 버튼을 누르면 현인의 18번인
굳세어라 금순아,,,,,,,,,,,,,,가 그 시절 그 때를 기억하게했다.
부산에는 지금도 이런 유서깊은 6,25의 흔적들이
더러 있어 향수를 자극했다.
40계단 층층대가 그랬고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그랬다.
어젠 일부러 40계단에 홀로 앉아 아코디온 켜는 아저씨랑 어깨동무를 하고
올만에 피난살이의 설음을 노래하며 경상도 아가씨를 불렀는데
남북이 지금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평화의 때가 또 얼마나 더 지속될진 모르겠지만
외신을 보니 한반도에 전운이 감도는지 아니면 연습삼아 하는 엄포용인지는 모르지만
B52가 자주 등장하였다.
누구는 이라크 다음이 이란이 될지 북한이 될지 .......................는 모른다는데
아무튼 세계의 시계는 오늘도 째깍째깍하고 돌아가고 있는가보다.
하지만 영도다리 난간 위에 서서 금순아 보고 싶구나................하고
두번 다시 그런 날이 오지는 않아야 할텐데. 우야믄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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