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277/ 고단수 흥정

커피앤레인 2007. 1. 11. 12:24

21204

 

 

 

 

 

고단수 흥정

 

 

 

울 할매집경북 영일군 대송면 공수동 000번지였다.

어릴적 기억으로는 효자역에서 기차를 내리면 거의 10리길을 걸어야 할매집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제끼 못이라는 큰 못이 있었고 좌우에는 끝없이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인가가 있는 마을주변에는 더러 땅콩 밭도 있었고 삼밭도 있었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더 걸어가면 방천이 나왔고 목화밭도 나왔다.

울 외할매집은 감나무가 유달시리 많았다.

꽤나 먹고 살만한 집이라 그런지 가을이나 겨울엔 찐쌀과 함께 홍시라던지 개암이라던지

그런 먹거리들이 풍부하였다.

도회지에서만 나고 자란 우리에겐  외할머니집은 그야말로  망구 땡일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느 가을엔 나락을 베면서 이넘도 한 품할꺼라고 벼 아래둥치를 잘랐는데

어린 나이에도 뭔 욕심이 있었던지 남의 논의 나락을 쓸적 하다가 그만 내 왼쪽 새끼 손가락만  베어버렸다.

아이고  이거 남의 논의 나락을 훔치다가 벌 받았는갑다하고 겁도나고

피도 철철 나서 얼른  새끼 손가락을 움켜지고 외할매집으로 달려갔더니 

못생겼지만 마음씨 착한 울 이종사촌 누나가  얼른 피를 멈춰야한다면서

담배가루인지 된장인지 그걸 바르고는 헝겊으로 꼭꼭 싸매어 주었다.

 

 

 

그 이후론 남의 논이나 밭의 것은 두번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시골에서 얼마간 살아보면  참 재미있는게 많았다.

옆방에서 하는 소리를 대부분 다 들을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간간이 뭘 팔러온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와서 울 외할매하고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서로 답은 뻔한데도

그 놈의 본심은 애써 감춘채 안그런척 하고 흥정을 주고받는게 

뒷방에서 듣는 우리로서는 거의 포복졸도할 정도였다.

(우리 그리도 능큼스럽는지............)

 

 

아무튼 그건 그렇고 며칠전에 노통이 뜬금없이 개헌을 하자고 하였다.

해서,요즘 장안의 화두가 모두 개헌에 관한 얘기같은데

신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마치 우리 외할머니집 안방 같았다.

개헌은 다들 공감하면서도 노통이 있을때는 안된다는게 주류같았다.

(또 뭔 꼼수를 부리는것 아이가?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수 없나보다)

문제의 본질인즉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임기가 다르고 매년 선거를 치뤄야하는 이 잘난 법을 뜯어고쳐야 하는데는

모두들 공감을 하는가본데 속 뜻은 다른데 있는 것 같았다.

니 꼬라지 보기싫어 못하겠다거나 아니면 그라믄 우리 밥그릇은 우찌 되는거고 .............하고

그게 가장 큰 고민인갑다.(하긴 정치란 것도 따지고 보면 흥정의 산물 아니겠나.계산을 잘하야지.)

국가의 장래를 위하고 나라를 위한다면 개헌은 해야하는게 마땅하다고 이 놈도 동의하는데

문제는 나라를 한번 통솔해보겠다는 야심이 있는자들이

통 크게 그래 ...........이번 기회에 내 대통령 안해도 좋으니 한번 제대로 고쳐보자하고

자기가 먼저 치고 나가면 이 무지랭이 생각으로는 그 사람 다음 대통령은  못되도 그 다음 대통령은

따논 당상일 것 같은데 다들 자신이 없는지  아니면 그 잘난 지지율이라도 안까먹고 싶은건지

아직은 영 아니올시다하고 ..........................배배틀었는데

오늘 아침은 마치 울 외할매집에 왔던 그 장사꾼과 외할매의 고단수(?) 흥정이 생각나 혼자 낄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