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지영作
2008/3/6
텃밭
얼마전에 용이가 살던 집이 팔렸다고 하였다.
500여평 남짓한 큰 땅인데
부산에서는 최초의 유치원이라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었다.
드라마 피아노의 촬영장소로도 쓰일만큼
집이 낡고 고색창연했는데 아름드리 나무들만은
이미 저 세상을 가고 없는 옛 주인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새로온 땅 주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어느날 보니 그 집을 송두리채 헐고
경량판넬로 집 두채를 뚝딱하더니
한채는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으로 차렸고
한채는 요사체로 사용하여 신도들이
꽤나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용이가 거기 살던 집이라
관심도 있고 또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공원밑에 제대로 디자인이 된 집을 지었으면 참 좋겠건만
와 저렇게 짓노 하다가
돈이 없어서 그런건가 아니면 집 주인이
요새 경기도 않좋은데 굳이 비싼 돈 들여가지고
집을 지을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했는지
좌우지간 보기에도 좀 꼴 싸납게
전통 절집이 아닌 경량칸막이로 임시 거처처럼 짓더니
몬몬 절이라고 간판부터 덜렁 내걸었다.
간혹 그 집을 지나갈 때 마다 안을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부르져 있던
가지들도 말끔이 정리하고
자갈도 깔고 마당 한 가운데에
큰 돌부처를 갖다놓아서 그런지
아름드리 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어느 고찰에 온 느낌마저 들 정도로 분위기가 일신되었다.
정학장의 텃밭은 바로 그 절 위에 있었는데
보아하니 축대를 쌓으면서 공터가 생기다보니
용이가 수십년간 그걸 텃밭으로 일구어 온 모양이었다.
그러다보니 용이는 아직도 지가 텃밭 주인인양
행세를 했는데
마침 경칩이고 대동강 물도 풀린다해서 어젠
올여름 무공해 상추도 좀 먹어볼까하고
정학장이랑 용이랑 같이 밭을 일구는데
아무리 해도 절이 너무 조용해서
-야 용아 절이 와이리 조용하노 .....하고 물었더니
대뜸하는 말이
-글마 그것 갔습니더. 하고 욕을 해댔다.
-글마 그거라니.....
가긴 또 오델 갔는데 .....했더니
-아이고 행님도,,,
가긴 오델 가여
팔고 갔죠
-엥 절을 팔고 가?
-8억인가 얼만간 더 받고 팔았답니다
글마 그것 진짜 땡중입니더
-땡중?
땅을 산지 2년도 채 안되었잖아?...............
-그러니 땡중이죠
-그라믄 부처님은 ?
-부처님이야 그대로 있져
-아 그라믄 ..........................
무거운 절이 떠난게 아니라 가벼운 중이 떠났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뭐가 그래요
첨 부터 계획적이죠
-계획적이라?
그나저나 머리는 참 좋데이
경량판넬로 집 두채 뚝딱하더니 그새 8억이나 또 벌었는가베
절이나 교회나 머리 좋은 넘이 우예 그리많노.
참 희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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