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680 / 텃밭

커피앤레인 2008. 3. 6. 09:33

 추 지영作

 

35487

 

 

2008/3/6

텃밭

 

 

 

 

얼마전에 용이가 살던 집이 팔렸다고 하였다.

500여평 남짓한 큰 땅인데

부산에서는 최초의 유치원이라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었다.

드라마 피아노의 촬영장소로도 쓰일만큼

집이 낡고 고색창연했는데 아름드리 나무들만은

이미 저 세상을 가고 없는 옛 주인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새로온 땅 주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어느날 보니 그 집을 송두리채 헐고

경량판넬로 집 두채를 뚝딱하더니

한채는 부처님이 계시는 법당으로 차렸고

한채는 요사체로 사용하여 신도들이

 꽤나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용이가 거기 살던 집이라

관심도 있고 또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공원밑에 제대로 디자인이 된 집을 지었으면 참 좋겠건만

와 저렇게 짓노 하다가

돈이 없어서 그런건가 아니면 집 주인이 

요새 경기도 않좋은데 굳이 비싼 돈 들여가지고

집을 지을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했는지

좌우지간 보기에도 좀 꼴 싸납게

전통 절집이 아닌 경량칸막이로 임시 거처처럼 짓더니

몬몬 절이라고 간판부터 덜렁 내걸었다.

 

 

간혹 그 집을 지나갈 때 마다 안을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부르져 있던

가지들도 말끔이 정리하고

자갈도 깔고 마당 한 가운데에 

 큰 돌부처를 갖다놓아서 그런지 

아름드리 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어느 고찰에 온 느낌마저 들 정도로 분위기가 일신되었다.

 

 

정학장의 텃밭은 바로 그 절 위에 있었는데

보아하니 축대를 쌓으면서 공터가 생기다보니 

용이가 수십년간 그걸 텃밭으로 일구어 온 모양이었다.

그러다보니 용이는 아직도 지가 텃밭 주인인양

행세를 했는데

마침 경칩이고 대동강 물도 풀린다해서 어젠

올여름 무공해 상추도 좀 먹어볼까하고

정학장이랑 용이랑 같이 밭을 일구는데

 아무리 해도 절이 너무 조용해서

 

 

 

-야 용아 절이 와이리 조용하노 .....하고 물었더니

대뜸하는 말이

-글마 그것 갔습니더. 하고 욕을 해댔다.

-글마 그거라니.....

가긴 또 오델 갔는데 .....했더니

-아이고 행님도,,,

가긴 오델 가여

팔고 갔죠

-엥 절을 팔고 가?

-8억인가 얼만간 더 받고 팔았답니다

글마 그것 진짜 땡중입니더

-땡중?

땅을 산지 2년도 채 안되었잖아?...............

-그러니 땡중이죠

-그라믄 부처님은 ?

-부처님이야 그대로 있져

-아 그라믄 ..........................

무거운 절이 떠난게 아니라 가벼운 중이 떠났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뭐가 그래요

첨 부터 계획적이죠

-계획적이라?

그나저나 머리는 참 좋데이

경량판넬로 집 두채 뚝딱하더니 그새 8억이나 또 벌었는가베

절이나 교회나 머리 좋은 넘이 우예 그리많노. 

참 희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