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김태 시인과 복병산의 봄

커피앤레인 2010. 3. 31. 11:27

 

이 경애 作

 

 

 

40139

2010/3/31

김태 시인과 복병산의 봄

 

 

 

 

김태 시인은 시인이며 공무원이었다.

앞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해서 그런지

단골이발사가 아무리 폼을 낼려고 해도

잘 안된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여도

이미 고향을 잃어 버린 사람처럼

외모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척 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지

자주 옆머리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왜 , 언제 부터 시 공부를 시작하였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마리아 릴케를 좋아하고

 두보나 정지용이나 김수영 시인을

자주 언급하는 것을 봐서는

그의 시력(詩歷)도 그리 만만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해서 자주는 아니지만 그와 한 두차례

마주앉아 술을 마셨는데 .......

한데 요즘은 그도 스트레쓰가 많이 쌓이는지

선생님 나 좀 도와주이소 하고 댓글을 달았다.

 

 

하긴 층층시하와 같은 원로시인과

중앙동/ 광복동/남포동에서 그래도 내가 낸데 하는 넘들이

죄다 모이는 이 바닥에서 그가 쉴  곳이란

그리 녹녹치 않을런지도 모른다.

 

 

해서

두보 얘기를 꺼내니 니가 두보를 알면 얼마나 아노 하고

그렇다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이야기 하니

야야 그거 언제 어느 때 얘기인데

시방 그런 이야기하노 하고

핀잔을 주니 쥔들 몬 신명이 날까마는

그래도 저녁이면 중앙동을 꾸역꾸역 찾아오는 걸 보면 

그도 이 시대의 보헤미안인가보다.

하지만 지가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는 두보가 되고 싶은건 아니겠제

 

 

*김태 시인 다른 건 다 되어도 좋지만

두보만은 닮지마소 .....................얼마나 가난했으면

마눌이 관을 뿥들고 울었겠오

*두보는 이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지만

얼마나 가난했던지 하루 한끼도 못먹고 어느 고을에서 마눌과 닷새를 버티었는데

그 고을의 유력자가 술과 고기를 내어 주어 비로소 허기를 면했다고 하였다.

더우기 두보가 죽자 선산에 묻을 장례비 조차 없어서 40여년간을 객지에

홀로 남겨졌는데 나중에 그 손자가 두보의 시신을 수습하여 선산에 고이 묻었다는데

,,,,,,,,,,,,,,,,,,,,,,,,,,,,,,,,,,,,,,,,,,,,해서 울 같은 무지렁이들은

당대 최고시인이며 모하고 지금 대단하다고 추겨주면 모하노

마눌 배 한끼 제대로 못채워 줬는데  ....................해서 그냥 해본 소리여 .

(그래도 당신은 공무원이니까 마눌 배는 않골리잔우 ㅋㅋ)

 

 

 

복병산의 봄

 

 

 

                                  詩/김 태

 

대낮인데

산벚나무가 등불을 들고 길을 나선다

일렁이는 불빛이

잠복하였던 옛 병사의 눈망울을 찾는다

햇볕이 옆에 있어도

늘 그늘에 앉은 팽나무는

알고 있다는 눈치를 주지만

숨길 곳도 숭을 곳도 없는 세상

떨어지는 꽃잎 한장이 다 말하고 있지 않는가

가슴팍에 닿은 산등선은

봄이 와도 흙빛 그대로 인데

복병산 무너질 수 없는 오래된 자존심이

실핏줄처럼 퍼져 땅을 뚫고 올라온다

 

 

                                2009/4 국제 펜클럽 거리 詩 축제 작품

 

 

*복병산은 용두산 공원과 마주 보고 있는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지금은 부산 중구청 뒷산처럼 되었지만 옛날엔 초병들이 경계를 하기도 하고

일제땐 방공호도 있었다는데 ,,,,,,,,,,,,,,,,,,,,

암튼 시인은 그 옛날 복병산의 그 쓰라리고 아픈 역사를 더듬으며

산벚꽃이 떨어지는걸 보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