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광복로 부산가요제

커피앤레인 2016. 7. 25. 02:02

 

 

광복로 부산가요제

 

 

 

뒤돌아보니 재미없는 날보다 재미있는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았다.

직업도 그렇고 사는 곳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참 좋았던 것 같았다.

물론 워낙 낙천적인 성격인데다 술도 좋아하고 예술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다보니

어디를 가든지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고 반겨주는 이들이 있었다.

때때로 뭔가 답답하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지갑만 달랑 들고 남해고 울산이고 함양이고 제주도를 돌아다니다보면 벗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네들도 있었다.

 

간밤엔 촌놈이 왔다.

놈은 미모의 여인을 대동하고 내보란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교수는 요즘 우리가락에 흠뻑 빠졌나보다.

오늘도 지리산인가 어딘가 갔다왔다고 했다.

다들 열심히 돌아다니며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가 보는데

이놈은 허구한날 꽃들과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요즘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때는 증발이 심해 식물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해서 물을 자주 주어야했다.

하지만 물 주는 것도 요령이 필요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무렵에 물을 줘야 얘들도 별 어려움없이 이 폭염을 이겨냈지만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에 물을 주면 과일을 맺는 것들은 열과라 하여

모양새가 영 그랬다.

 

며칠 전에는 분꽃이 너무 아름답게 피었는데 누군가 눈독을 들였나보다.

새벽녘에 언놈이 뿌리채 몽땅 뽑아 가버렸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 싯귀처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보다............하고

노래했는데 한송이 꽃을 피우려면 사실 봄부터 씨를 뿌리고 꺾꽂이를 하여

온갖 정성을 다 기우려야 원하는 꽃을 얻을수 있었다.

분꽃은 다른 꽃과 달리 저녁무렵이어야 비로소 꽃이 만개했다.

해서 지나가는 이들이 너무 이쁘다고 사진을 찍었는데

누군가의 조그마한 욕심이 아름다운 골목길을 순식간에 황량하게 만들어버렸다.

열도 나고 속도 상해

꽃 훔쳐가지 마세요

이 골목길은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입니다.하고

경고성 팻말을 붙였더니 사람들이 뭔 방(?)인가하고 유심히 들여다봤다.

 

본성이 청개구리과는 아니지만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겨울바다가 몹씨 그리웠다.

겨울바다는 언제나 봐도 황량했다. 그 중에도 제주도 협재바닷가가 제일 황량해보였다.

 

 

한때 이봉조악단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장하가 10월에 광복로에서 가요제를

열고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아마도 기획에서부터 스폰서까지 좀 맡아달라는 눈치였지만 선뜻 대답할 그런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난 원래 가요하고는 거리가 먼데........

-그래도 마산에서 작은음악회를 감독하셨잖아요

-거기야 좋아하는 예술인들이 십시일반 도와줘서 했지

-그래도 행님은 아는 분들이 많지않습니까?

_그래? 가수는 누굴 초대할건데?

 

말이 나온김에 아무래도 다음주는 시청에도 가보고 구청 문화관광과장도 만나고

시원소주 조회장에게도 연락을 한번 해봐야겠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했지만 이런 문화예술 쪽은 아무래도 지갑이 두둑해야

원하는 만큼의 퀄리티를 보장했다.

그래도 부산하면 광복로/남포동/중앙동/자갈치와 BIFF 광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이 지나면 곧 가을이 올텐데 올가을엔 미친척하고 낯익은 가수들과 어울려

굿거리 장단을 한번 맞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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