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76/ 연민의 정

커피앤레인 2006. 6. 15. 08:33

*이 사진은 은비님이 찍은 사진인데 이번 내 디자인에 참고 하려고 합니다.

13451

 

연민의 정

 

적막만 가득한 현장엔

전날

작업자들이 내버리고 간 장갑이

여기 저기 너즈브리하게 던저져 있었다.

 

 

아직 3층 사람들은 나오지 않은 모양인데

일주일동안 공사하느라

소음과 함께 먼지까지 일으켜  

늘 지송스러워.

 

나온김에  

계단이라도 말끔이 치워주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빗질이랑 걸레질을 하였더니

주위가 한결 깨끗해 보기에 좋았다.

 

 

 

 

 

 

현장에서 나와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며

층층이 불을 켰다.

 

 

늘 그렇지만

중앙동 근처로 이사를 오고부터는

이 건물 식구중

언제나 내가 젤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다.

 

 

컴컴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익숙한 것들이

뭔가 빈 공간처럼 허허롭기 조차 했다.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내게 딸린 숙명이나 되듯이,,,,,,,,,,,,,,,,,,,,,,,,,,,,,,,,

 

 

하긴 늘 마주치는 것들이

텅빈 거실 / 텅빈 사무실 /  텅빈 현장

어느 곳에 가나 다 공허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반평생을

 그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유유자적 하면서

살았는지는 알수없지만

마치 물속을 즐기며 헤엄치듯이

내딴엔 그렇게 살아 온 것 같았다.

 

 

 

(하긴 텅빈 공간이라도 있으니  

나같은 사람에게도 디자인을 의뢰하겠지만 ,,,,,,,,,,,,,,,,,,,,,,)

 

 

 

서분이는 돈이 잘 안되는지

예정된 날에 입금을 시키지 않았다.

 

 

 

이젠 틀도 다 짜쪘고 형편도 어려우니

도면대로 처리만 하면 한푼이라도 아낄 수 있으니

스스로 집행하라고 부부 모두에게 일러줘도

막무가내로 다 끝내달라고 말하였다.

 

 

(이걸 웃어야 하나 ? 울어야 하나? 차암내 ..........................)

 

 

디자인에 관련된 것이면

끝까지 봐줘야 할 것이지만

 

 

이젠 취향대로 벽지는 뭘 선택할 것이며

바닥재는 강화마루판 중에

채리를 선택할 것인지

오크나 메이플을 선택할 것인지는

삼척동자라도 

 다 할 수있는 일인데도

아예 인테리어 건축에는

근처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원래 시작할 때부터  

디자인이나 감리는 공짜라고 했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도 없지만

 

 

재료비와 인건비만은

제때제때 지불해야하는건데도 

참 딱한 노릇이었다. 

 

 

뿐만아니라

3-4일 후에 다음작업이 들어오려면

여러가지 주문도 미리 해야하고

일꾼도 수배해야하고

날짜도 픽스해야하는데

 

 

제 날짜에 입금마저 제대로 않되면 

다음작업을 예측할 수 없을 뿐더러  

하청업체 보기에도  민망했다.

 

 

 

물론 수십년간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꼴랑 며칠간의 말미는 줄 수 있지만

약속이란게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돈 받을 거라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일꾼들의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한 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의 기분을 달래려면

적어도 미안하다는 전화를 한번쯤은 해야하는데

별것 아닌것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어젠 하는 수없이 그렇게 해야 했다.

 

 

전화를 끝내고

비오는날

창 밖을 내다보면서

애꿎은 담배연기만 자꾸 허공에 날렸더니

 

 

있기가 민망했던지

아니면 제김에 화가났던지

서분이가

-갑니더이 하고 나가는데

 

 

우산도 없이

그렇게 쓸쓸히 혼자 걸어나가는 여자를 쳐다보면서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도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끝까지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괜히 도와준다고 말했나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속을 어지럽혀서그런지  

어젠

이래저래 속이 많이 상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