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아 우르에서 그발 강까지 / 114
written by j. i. woo
요단이 모맥을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러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여호수아 3장 15절-17절)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그때까지 유유히 흐르던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더니
결국은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 쌓인체
멀리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흐르던 물마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사르단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한 촌락의 이름이었다.
아담 읍은 여리고 북쪽 약 30 km에 있는 지점으로
요단 강과 지류인 얍복 강이 합치는 지점에서 불과 2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르단 근처의 한 도시 이름이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을 오늘날의 텔 다미예라고 하였다.
염해는 지금의 사해를 가리켰다.
염해 (Salt Sea)는 종종 아라바의 바다 또는 동해라고도 성경에서는 표기하였다.
사해(Dead Sea)라는 말은 AD 2세기경에 헬라인(그리스)들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물 1리터당 300g 이상의 소금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사해는
바다 소금의 농도보다 6배가 많은 25%-30%의 염분을 지니고 있었다.
사해는 동아프리카 단층 계곡이 연장된것으로 자체길이는 약 80km이었다.
폭이 가장 넓은 곳은 18km이고 수면의 넓이는 약 1036 제곱 km이었다.
평으로 환산하면 약 3120평 남짓하였다.
사해의 수면은 해면보다 394m나 낮았다.
때문에 가장 깊은 곳은 해면보다 792m나 아래에 바닥이 있었다.
주위에 둘러싸여 있는 산들과 고원에 비교하면 그 깊이가 무려 1585m나 되었다.
사해는 1974년 늑대라는 뜻을 지닌
무함마드 앗디브라는 소년에 의해
더욱 유명해졌는데
타아미레족의 배두인 소년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으려고
여리고 남쪽 13.6km지점의 사해 서쪽 해안의 절벽아래에 있는
한 동굴에 들어갔다가
아모포에 싸인 가죽 두루마리가 들어있는
여러개의 항아리를 발견하였는데
당시 배두인 소년이 발견한 이 두루마리는
이스라엘의 고대문서중
가장 유명한 고대문서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각광을 받고있는
사해사본이라는 고대문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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